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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소설

야담(설화)의 발생은 상고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으나 오랫동안 구두로 전승되어온 까닭으로 그 발생연대를 짐작할 수 없다. 문헌상으로 볼 때 최고의 문헌 중 하나로 알려진 《구삼국사(舊三國史)》가 현재 망실되어 그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후대문헌들의 내용으로 미루어 정사(正史) 외에도 민간에 떠돌아다니던 이야기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이어 8세기초에 신라의 김대문(金大問)이 화랑이나 승려, 또는 민간에 구전되는 일사기문(逸事奇聞)들을 모은 것으로 생각되는 《화랑세기(花郎世紀)》《고승전(高僧傳)《계림잡전(鷄林雜傳)》 등이 저술되었다고 하나 현전하지 않고 있다 야담이 주로 사대부층이나 중인층에 의해 이루어졌으면서도 정통한문문학과는 달리 당대 사회의 갖가지 모..
야담(설화)의 발생은 상고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으나 오랫동안 구두로 전승되어온 까닭으로 그 발생연대를 짐작할 수 없다. 문헌상으로 볼 때 최고의 문헌 중 하나로 알려진 《구삼국사(舊三國史)》가 현재 망실되어 그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후대문헌들의 내용으로 미루어 정사(正史) 외에도 민간에 떠돌아다니던 이야기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이어 8세기초에 신라의 김대문(金大問)이 화랑이나 승려, 또는 민간에 구전되는 일사기문(逸事奇聞)들을 모은 것으로 생각되는 《화랑세기(花郎世紀)》《고승전(高僧傳)《계림잡전(鷄林雜傳)》 등이 저술되었다고 하나 현전하지 않고 있다

야담이 주로 사대부층이나 중인층에 의해 이루어졌으면서도 정통한문문학과는 달리 당대 사회의 갖가지 모순과 갈등 및 여러 계층에 걸친 인물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성격에서 유래한다 하겠다. 거기에 작자(편자)층이 당시의 변환기적 사회상을 체험하면서 중세적 질서에 대해 비판 혹은 회의의 시각을 지녔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시절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2. 괴승신수(怪僧信修)

어느 날 그는 가득찬 시주바랑을 메고 절을 향하여 돌아가는데 문득 그의 두 눈은 집마을로 향하는 언덕길에 쏠리어 움직이지 않았다.

『응 저게 누구냐.』처음 그의 입에서는 안까님이 나오고 드디어 전신에 열이 핑 돌았다.

남치마에 노랑저고리로 비록 때묻은 무명일망정 아직 빛만은 선명한 색 옷을 떨쳐 입은 한 젊은 여자가 물동이를 이고 총총히 마을을 향하여 들어가는 것이다.

『흥, 고것 괜찮은데. 사람 참, 눈꼴 사납겐 해주네.』

신수는 빨리 그 여인의 뒤를 따라갔다.

원래 성질이 호탕한데다가 색을 즐기는 그는 눈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어떻게 달래든지 능청맞게 내 것을 만들고 말았다.

사람들이 혹 무어라고 말하면

『지금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욕(利慾)이 서로 얼켰으며 혹은 심장이 포악하여 번뇌(煩腦)에서 깨어나지 못하므로 좋은 것을 보면 침을 흘리고 고운 여인을 보면 음심을 품으나 이루지 못하고 바둥거리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서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곧 먹고 색을 보아도 곧 취하므로 그 뒤는 꼭 여름날 소나기 오는 것과 같이 순간에 씻어버리나니 이것이 그래 제일 아니요?』

하며 여전히 크게 웃어 버렸다.

그러므로 마음이 걸직한 계집이나 바람기 있는 여자들이면 도리어 고리탑삭한 범부(凡夫)보다 신수의 이 호담 패연(沛然)한 것을 좋아하여 슬슬 기어드니 그도 밉지 않게 보는 계집이면 그 만큼 치닥거리도 해주어 이 방면에 있어서의 평판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지금 물긷는 여자의 뒤를 이렇게 따르나 그 계집은 눈치를 채었는지 안채었는지 핼끔 돌아보더니 한번 방긋 웃고 더욱 걸음을 빨리 하였다.

『어구, 고것 사람 녹인다.』신수도 급히 따라갔다. ..................................중략
윤백남[Yoon, Baek-nam, 尹白南]

1888(고종 25)∼1954 극작가·소설가·영화감독.

1888년(고종 25) 충청남도 공주 출생으로, 본명은 교중(敎重)이다. 서울 명동의 경성학당 중학부를 마치고 도일해 후쿠시마현[福島縣]반조중학교[盤城中學校] 3학년에 편입했고, 이듬해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예과를 거쳐 정경과(政經科)로 진학하였으며.
졸업 후 관립 한성수형조합(漢城手形組合)에 근무하면서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강사로 활동,한일강제병합 이후에는 『매일신보』 기자로 활동하며 문필생활을 시작했고, 1912년에는 작가 조일재(趙一齋)와 함께 신파극단 문수성(文秀星)을 창단해 배우로도 활약하는 등 연극활동을 겸했다.

1922년 민중극단(民衆劇團)을 조직해 자신의 희곡 「등대지기」·「기연(奇緣)」·「제야의 종소리」 등과 번안·번역극 등을 상연했다. 1923년 한국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月下)의 맹서」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그의 작품은 초기 계몽주의적·인도주의적 경향을 띠었다. 예컨대 「대도전」·「흑두건」 등과 같은 소설은 도둑의 이야기로 혼란된 사회상황 하에서의 집단적 폭력의 문제를 서술했으며, 또 경향소설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 경향은 점차 현실패배적인 역사소설이나 야담류로 흐르게 되었고, 1933년 무렵에는 본격적인 야담가로 나서기도 했다.
그의 논문 「연극과 사회」는 크레이그(Craig,G.)의 「극예술론」에 바탕으로 우리의 관점에 입각해 쓰였는데, 소박한 논조이기는 하나 당시 연극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는 개화기의 선구적인 인물로서 금융인으로 출발해 언론인·연극인·교육자·문인·영화인·만담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영화계에 선구적 공적을 남겼고 연극인으로서도 초창기에 극단을 주재하고 희곡을 쓰는 등 신파극을 정화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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