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설화)의 발생은 상고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으나 오랫동안 구두로 전승되어온 까닭으로 그 발생연대를 짐작할 수 없다. 문헌상으로 볼 때 최고의 문헌 중 하나로 알려진 《구삼국사(舊三國史)》가 현재 망실되어 그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후대문헌들의 내용으로 미루어 정사(正史) 외에도 민간에 떠돌아다니던 이야기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이어 8세기초에 신라의 김대문(金大問)이 화랑이나 승려, 또는 민간에 구전되는 일사기문(逸事奇聞)들을 모은 것으로 생각되는 《화랑세기(花郎世紀)》《고승전(高僧傳)《계림잡전(鷄林雜傳)》 등이 저술되었다고 하나 현전하지 않고 있다
야담이 주로 사대부층이나 중인층에 의해 이루어졌으면서도 정통한문문학과는 달리 당대 사회의 갖가지 모순과 갈등 및 여러 계층에 걸친 인물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성격에서 유래한다 하겠다. 거기에 작자(편자)층이 당시의 변환기적 사회상을 체험하면서 중세적 질서에 대해 비판 혹은 회의의 시각을 지녔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시절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백남[Yoon, Baek-nam, 尹白南]
1888(고종 25)∼1954 극작가·소설가·영화감독.
1888년(고종 25) 충청남도 공주 출생으로, 본명은 교중(敎重)이다. 서울 명동의 경성학당 중학부를 마치고 도일해 후쿠시마현[福島縣]반조중학교[盤城中學校] 3학년에 편입했고, 이듬해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예과를 거쳐 정경과(政經科)로 진학하였으며.1922년 민중극단(民衆劇團)을 조직해 자신의 희곡 「등대지기」·「기연(奇緣)」·「제야의 종소리」 등과 번안·번역극 등을 상연했다. 1923년 한국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月下)의 맹서」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대도전」·「흑두건」 등과 같은 소설은 도둑의 이야기로 혼란된 사회상황 하에서의 집단적 폭력의 문제를 서술했으며, 개화기의 선구적인 인물로서 금융인으로 출발해 언론인·연극인·교육자·문인·영화인·만담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영화계에 선구적 공적을 남겼고 연극인으로서도 초창기에 극단을 주재하고 희곡을 쓰는 등 신파극을 정화하고자 노력했다